미국 32일차. 9월5일(토) 신호등
2026.8.1. ~ 2027.7.31. Emory University 방문 연구자 체류
토요일인데 논문 심사 3건이 있어서 아이들 공부 봐 주고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아이들은 체스하면서 놀았다.

신호등
2001년, 그러니까 교사가 된 첫 해에 운전면허를 땄다. 바로 옆 학교에 발령받은 대학동기 희순이랑 같이 여름방학 동안 장유에 있는 운전면허시험장에 다니면서 한번에 합격했다. 2002년에는 군복무를 중앙결찰학교에서 했는데 면허를 따 둔 덕분에 순경임용예정자들에게 운전연수를 시켜주면서 조금씩 바깥 공기를 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 운전할 일이 없었다. 부산여중은 지하철과 버스환승으로 다녔고 부산대학교 대학원은 김수현 샘이 자주 태워주었다. 부산영선중은 지하철과 버스환승으로 다니다가 지하철과 자전거로 영도다리를 건너다녔다. 이상미 선생님이 자주 집까지 태워주셨다. 하단중학교도 자전거로 잘 다녔고 감천중학교는 지하철과 버스환승으로 출근해서 퇴근은 강원옥 수석샘이 거의 태워주셨다. 부산대학교야 지하철 타고 순환버스 타면 눈 감고도 다니는 길이니 굳이 길 막히는 시간에 자가용을 탈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집 아이들도 자가용 없이 벡스코, 해양박물관, 다대포, 을숙도 잘 다녔는데, 2020년에 코로나가 터졌다. 대중교통을 타지 않기로 결심하자 2020년에서 2021년 넘어가는 동안 아이들이 갈 곳이 없었다. 차가 없으니 야외로 나가 체험을 못하고 늘 집에만 있는 아이들을 보다 못해 결국 차를 사기로 했다. 운전을 아예 할 줄 몰라서 처삼촌에게 5일 정도 연수를 받았다. 마지막날에 반여동 중고상에 가서 QM6를 디젤로 사고 5년간 열심히 타고 다녔다. 혼자서 여기저기 들이받고 다녀서 범퍼는 앞뒤 4군데 돌아가면서 다 까졌고, 옆구리도 푹 들어갔지만 나중에 모아서 고치기로 하고 그냥 타고 다닌다. 그러다가 2026년 9월에 연구년을 보내러 미국에 왔다. 조지아주의 존스 크릭이라는 동네인데, 미국에서는 차가 필수라는 소문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진자로 대중교통이 아예 없었다. 코로나 덕분에 운전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연구년 하러 미국에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평생 차 없이 잘 살았는데 40살 넘어서 운전을 배운 게 여기서 이렇게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행히 길은 널찍하고 사람들은 양보를 잘해서 운전하기는 매우 좋은 곳이었다. 한 달 내내 길을 몰라 어리버리하거나 급차선 변경을 했는데 부산이었으면 ‘빵!’ 소리가 나올 타이밍이라 나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지만 아무 소리도 안 나고 아무 일도 없어서 도리어 놀라고, 뭔가 허전한 기분까지 든 적이 많았다. 미국 정착을 도와주시는 한국분이 “이 동네 운전이 거칠어요.”하길래 나는 너무 놀라서 “아니 정말 다들 양보도 잘하고 친절하던데요?”하니까 그분이 “부산에서 운전하다 오셔서 그래요.”하셨다. 아, 부산에서 운전 배워서 다행이다, 하는 안도감과 자부심과 알 수 없는 부끄러움 사이에서 실소가 나왔다.
어쨌거나 기본적으로 신호등도 많고, 표지판도 큼직하고, 자동차 역사가 오래된 만큼 운전하는 데에 도움되는 표지판들이 잘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신호등이 쇠기둥 대신 전깃줄 같은 데에 매달려 있는 곳도 많았다. 어련히 튼튼하게 매달았겠지만 뭔가 바람불면 떨어질 것 같이 불안했다.

그리고 신호등 모양이 각양각색이었다. 3개짜리, 4개짜리, 5개짜리도 있는데 아직까지 완전히 신호 체계를 파악하지 못했다. 특히 좌회전. 차선 자체는 좌회전마다 전용 차선이 생겨나기 때문에, 1차선의 경우 잘 가다가 갑자기 더이상 직진하지 못하고 좌회전에 걸리게 되는 부산의 도로와는 차원이 다르지만, 신호등이 각양각색이라서 어렵다.
초록불일 때만 좌회전하시오. 당연한 거 아님?

초록불일 때는 양보하면서 좌회전하시오. 초록 좌회전 신호일 때는 당연히 좌회전하시고, 초록불만 남아도 잘 보고 좌회전해도 됨.
지금은 마음 놓고 좌회전 가능.

지금은 반대편 차선 잘 보고 양보하면서 좌회전 가능.

지금은 좌회전 안 됨.

제일 놀라운 신호등. 얘들은 좌회전 초록불이 아예 없다. 노란 좌회전 신호가 깜빡일 때 양보하면서 좌회전하시오. 노란 신호가 점멸하지 않으면 곧 빨간불로 바뀐다는 뜻임.

아래는 신호등이 꺼진 게 아니라 노란불이 깜빡이는 중임.

좌회전 당연히 안 되겠지?

좌회전 차선이 둘이라 둘 다 좌회전 금지라는 뜻인가? 처음에는 왼쪽 화살표가 보여서 좌회전하라는 말인가? 하고 헷갈림. 그냥 동그란 빨간불 해도 되지 않나?

3개짜리 신호등

4개짜리 신호등

4개인데 배열이 특이한 신호등

4개짜리도 기둥에 달린 것, 전깃줄에 달린것이 있고, 기둥에 달려 있는 것들도 높이가 제각각.

5개짜리 신호등. 5개짜리들도 디자인이 크게 2가지로 다르게 생겼다.

U 턴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로, 한국은 U턴 표시 있는 곳에서만 유턴이 가능한데, 미국은 U턴 금지 표시가 있는 곳에서만 유턴이 금지라네. 즉, U턴에 관한 아무 표시가 없으면 어디서든 유턴 가능하다. 그래서인지 U턴 금지 표시는 잘 찾아보기 어려웠다. 결국 위에 나온 모든 좌회전 차선에서는 유턴이 가능했다는 말씀.

우회전은, 신호가 어려운 게 아니라 차선이 어려웠다. 부산에서 운전하다 보면 1차선으로 쭉 가다가 갑자기 1차선이 좌회전 전용 차선으로 바뀌어서 직진을 못해 급차선 변경을 해야 하는 일이 많다. 여기서는 우회전이 약간 그런 느낌이다. 특별히 신호가 있는 것은 아닌데 다음 신호에서 우회전하려고 바깥 차선 따라 가다보면, 갑자기 내가 우회전하려는 교차로 가기 전에 골목길로 들어가는 우회전 전용 차선으로 바뀌어 있어서 직진 차선으로 차선 변경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르는 길이라고 너무 미리 우회전 차선을 타고 가면 낭패를 보게 된다. 내가 우회전에 대해 들은 주의사항은 이게 아니었는데… 우회전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우나, 우회전 차선에 빨간불이 있으면 무조건 서야 한다는 것만 배웠지 차선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아래는 정말로 보기 드문 우회전 신호등

아래는 한국에서도 한창 시행 중인 우회전 하기 전에 일시정지. 바퀴를 3초 이상 멈춰야 함. 서행으로 지나가는 것도 안 됨. 아래 표지판만 보면 생각나는 유튜브 영상이 있다.

- 표지판 해석1. 빨간 불에 우회전하시오. 일단 멈춘 후에.
- 표지판 해석2. 빨간 불에 우회전 하시오. 후에 일단 멈춤.(아래 이미지를 클릭해 보세요.)
여기는 좌회전 신호 같은데 왜 직진하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 길로 가면 좌회전 차선이 나올 거라고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고..

